우주진 宇宙塵 드라이버 혼성 리포트
임민욱
‘혜성(彗星)처럼 나타났다.’ 어떤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두각을 드러낼 때 쓰는 말이다. 혜성의 천문 기호(☄)를 들여다보면 마치 우주의 오징어가 비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풀어헤친 머리카락이나 빗자루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짧고도 길며 두렵고도 기쁜 만남을 가리켜왔다. 이 혜성의 머리와 꼬리는 태양계 내에 진입하면서 표면의 기체들이 증발하고 부서지면서 형성된다. 혜성은 큰 먼지 덩어리인 셈이다. 지구는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장렬히 전사하는 혜성과 두터운 인연을 맺고 있다. 혜성은 지구의 운명이다. 그 인연을 따라 빗자루를 들고 우주의 먼지 찌꺼기를 채집하는 사람이 있다.
여다함과 내가 옷깃을 스쳐 먼지가 떨어진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 때 피진 컬렉티브와 함께 활동했던 시절에도 여다함은 국제적(?) 먼지를 채집해 와서 벼룩시장에 내다 팔았다.(생활먼지수집, Experimental Exchange Haja_피진 컬렉티브, 춘천마임페스티벌, 2005) 그는 탈(脫)학교 학생이었다. 정규교육을 거부한 그는 학교에는 안 갔지만 친구들이 미술학교였고 ‘저잣거리’에서 배웠다. 그림을 배운 적 없는 그와 글쓰기를 배운 적 없는 내가 이렇게 마주할 줄은 또 몰랐다. 우리에게 서로 닮은 점이 있다면 이 저잣거리에 대한 감응과 두려움이 각자의 발걸음을 여기까지 이끌어왔다는 점일 것이다.
‘민욱씨’…… 도록에 들어갈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원래는 우리가 하자센터에서 만났기 때문에 그는 나를 ‘민욱’으로 불러왔다. 하자센터에서는 별명으로 부르는데 나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그냥 ‘민욱’이라 부르도록 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나이 때문에 부담이 됐는지 ‘씨’자를 하나 덧붙여서 불렀다. 나름 존칭에 대한 고민을 한 결과인 것 같다. 아무튼 나와 같은 사람에게 글을 부탁하다니 그가 외롭게, 어렵게, 꾸려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혼자서 미술계 문턱에 서 있을 때 무엇이 그리운가. 미술계를 서바이벌 게임에 비유하고 정글로 생각하는 건 작가들이 아니다. 순위를 매겨서 재미를 보고 손과 마음을 구속하고 싶어 하는 것은 대중매체의 심심풀이이며 때가 되면 나오는 예술의 종언이나 주식투자자처럼 말하는 이들의 땅콩과 같은 것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순수미술만 하라고 하거나 참여와 비판의 발언이 없다고 한심해 하는 것조차 비행기를 돌리라고 요구하는 갑과 을의 프레임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인정욕구에 치이고 그 욕구 때문에 미술을 그만 둔다. 혜성에 비유하자면, 어떤 혜성들은 태양계 내에 진입한 후 다른 혜성의 질량이나 행성에 부딪혀서 부서지기도 하고, 궤도요소가 잘 변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어떤 혜성은 아예 태양계 밖으로 빠져나가 버리기도 한다. 여다함은 냉소와 회의 대신 탐사선을 차렸다. 지구인들은 1999년 2월에 혜성 탐사선을 쏘았다. 그 이름이 스타더스트(Stardust)였다.
먼지의 포물선 궤도 속, 유유자적 운전하는 여다함은 스타더스트 론썸택시드라이버다. 이 글은 거기에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평범한 결론에 이르러 나 자신의 평론가 자질에 대한 회의를 멈추고 비로소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미술계의 운동장이나 공장, 주식시장과 같은 프레임에서 보자면 뾰족한 관점도, 통쾌한 해석도 없이 메모장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계석 자리는 비어 있다. 이 메모장에는 사람 여다함이 드문드문 드러나 있다. 그래서 미술계에서 소위 말하는 ‘동시대 작가에게 전하는 충고’를 따르지 않고 작업해온 이 사람의 단점을 몇 가지 털어 놓을까 한다. 그것이 곧 자유롭고 자율적인 여다함 작업의 비밀이며 미술을 계속하는 그의 장점이라 주장해보기 위해서다.
미술이 더 할 수 있는 일
첫째, 여다함은 샛길로 잘 빠진다.
아이들이 기가 막히게 영어토론을 하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논리력과 설득력으로 똑 부러진 토론을 끝낸 뒤 금메달을 딴 운동선수처럼 승리에 취해 얼싸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훈련된 지력은 인간성과 어떻게 비례하는 것일까. 그 수많은 말들과 정보로 무장한 채 공감하는 로봇과 같은 전사들을 들여다보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도 학습이 가능한 건지 궁금했다. 그렇다면 세상은 점점 살 만한 곳이 될 것이고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여다함이 아마 “아, 그러니까 그게, 아, 그게 말이죠, 아, 그래요?” 하면서 특유의 말투로 답변을 지연할 것이다. 예전에 여다함은 말수가 더 적었다. 그런 사람들은 초감각이 있어서 주파수가 다른 소리를 들으면서 대화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화는 열려있고 답변엔 시차가 생기는 거라고 짐작했다. 이런 대화는 서툴러서 나를 나로 돌려주고, 동시에 내가 아니라는 것도 밝혀주는 반향정위(反響定位)의 반성적 가치를 지닌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꽤 산만해 보였던 것 같다. 피어싱은 여기저기 걸쳐있는데 바지는 저만치 흘러내리고 있어 불안했다. 수첩을 만들고 드로잉도 하며 하자 작업장학교 로고도 만들었다. 온통 고래였다. ’하자 작업장학교 만들기’ 팀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개교식에 <고래이야기>라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상영했다. 2001년 9월 12일 9.11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아래는 그 영상에 나오는 여다함의 내레이션이다.
“팔에는 지느러미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 나는 백과사전에서 그것을 찾아보았는데 그 흔적은 고래의 것을 꼭 닮아 있다. 이 삭막한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다를 꼭 닮은 하늘을 쳐다보는 일뿐이다. 땅 위를 걸으면서 하늘을 헤엄치는 달과 별들을 본다. 하늘이 내려온다. 하늘이 바다처럼 날 감싸고 이제 곧 하늘이 바다인 물 속에 빠져 있다. 퇴화된 내 지느러미는 날 불안하게 만든다. 모래 압력이 나를 짓누르고 나는 뻐끔뻐끔 기포를 분출한다. 그러나 나는 물의 압력에 짓눌려 죽고 싶지 않고 물의 흐름을 타고 헤엄치고 싶다. 나는 이 물 속에서 온 몸으로 고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저 멀리 북극에서 고래는 나를 부르는 노래를 한다. 잘 들으면 들을 수 있다. 온 몸으로. 귀가 듣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지느러미들을 끌어내릴 고래들을 만나러 갈 참이다. 그것이 오늘 2001년 9월 12일에 시작하는 일이다. 고래의 노래가 이 우주를 감싸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듣는 것만 유일하다고 말한다. 가청권 밖의 노래가 엄연하게 우주에 있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여기 있다. 나도 그렇게 우주를 유영하고 싶다. 나는 고래가 되어 헤엄치고 싶다. 바로 오늘 2001년 9월 12일에……”
2014년 4월 16일 이후 고래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보니 불길한 징조를 감지했던 잠수함 토끼의 독백을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날 이후 고래를 찾고 고래의 노래를 들으려 하는 것은 국가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소리가 될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히 파시즘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시대에 미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미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이문재 시인은 십 년 만에 묶어낸 『지금 여기가 맨 앞』의 시집 날개 글에 이렇게 적었다.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고 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곤 했다. 시를 나 혹은 너라고 바꿔보기도 했다.” 나도 미술을 나 혹은 너라고 바꿔본다.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그러고 보니 나도 샛길로 빠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혜성에겐 주어진 길이 없다. 부딪혀 길을 낸다. 달은 혜성이 낸 상처를 안고 산다. 혜성을 순 우리말로 하면 살별이라고 한다. 살. 별. 왜 그렇게 붙였을까. 길을 쓰는 빗자루 같은 꼬리를 가졌다고 해서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하늘에 이 빗자루가 나타나면 멸망을 두려워하고 나쁜 징조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재앙을 두려워하는 대신 그 빗자루를 들고 잿더미 속에서도 할 일을 찾았다. 그렇게 저잣거리에 나서서 슬픔에 의해 깨어났고 미술을 시작했으며 시간을 잊었다. 시간을 낭비했다. 누가 사랑하는 것을 시간낭비라 하는가. 미술이 더 할 수 있는 일이다.
여다함의 요철화(凹凸花) 리얼리즘의 몰골화(沒骨畫)
한 스님이 물었다.
“옛 말씀에 ‘텅 비고 밝아 스스로 비춘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스스로 비춤’입니까?”
“남이 비추지 않음을 말한다.”
“비춤이 닿지 않는 곳은 어떻습니까?”
“그대는 말에 떨어졌구나.”
(『조주록』, 장경각, 1991, 83쪽.)
둘째, 여다함의 작업은 무개념이다.
현대 미술작가가 개념이 없으면 참말로 걱정인 것이다. 미술학교에서는 온통 개념을 정리하라고 요구하는데 말이다. 미술뿐인가. 개념은 곧 자본이고 권력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천연덕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다함의 작업엔 고집도 없고 여다함도 없다. 한국적이지도 않고 서구적이지도 않다. 설치미술만 하는 것도 아니고 퍼포먼스, 비디오, 디자인도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내가 해봐서 아는 데라는 으스댐이 없다. 여다함의 작품은 되어가는 것이다. 미술이 아닌 것으로 미술계에 척척 들어와서 “아, 아닌가요?”하고 되묻는다. 미술이 될 때까지 해놓고는 ‘아 그래요?” 한다. 십 년 전부터 먼지를 채집했으나 절제와 관념에 따라 움직이거나 치열한 작가 정신이 명령하는 방법론도 없다. 개념에 껴 맞추느라 억지 주장을 수입해 맞춰 입고선 대화가 불가능해진 작가들과 달리, 언제든 그 개념에서 멀어질 채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도시 속을 쏘다니며 마음에 충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끌려 다니지 않게 된 여다함의 선택이다. 거기에 세운 <먼지관제탑>(2005~2012)에는 모든 것을 향해 활짝 열어 다 받아낸 삶의 몰골과 요철화가 그려져 있다. 거기엔 윤곽도, 뼈대도 없이 안과 밖으로 모두 감염시키는 삶과 죽음의 동시 기록이 농담을 가지고 쌓여만 가고 있을 뿐이다. 그게 여다함이 개념에만 몰두하고 방법론에 갇혀 함몰된 기성 작가들의 통론에 맞서는 기세다. 당나라의 선승 임제(臨濟) 의현(義玄)의 유명한 말씀 가운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투철히 벗어나 자유자재 해진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그런 것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여다함의 방법론이며 새로운 개념미술이다.
부조리한 수용-블루스 커뮤니티
셋째, 여다함의 작업은 무계획적이다.
말하자면 여다함은 트랙 위를 질주하는 선수들 사이에 서있지 않다. 고래는 더 빠르게, 더 높이 외치는 소리를 무시한다. 고래는 대신 파열음을 내고 그 소리는 5천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릴 수 있다고 한다. 고래가 깊이로 파고드는 우주는 밤하늘 전체보다 더 알려져 있지 않다. 동시대 미술작가들이 보여준 변화의 징후 가운데 하나는 드로잉 수첩보다 플래너가 대체한 자기관리와 계획성일 것이다. 유명한 작가들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한 습관을 배워 일찌감치 체화하고 3개년 계획, 5개년 계획을 세워 미술관 정복에 나선다고 한다. 여다함은 어느 인터뷰에서 3년 뒤에 뭐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아르바이트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대답을 허허실실 웃으며 툭 꺼내 놓았다. 그의 특징이 또 그렇다. 자주 웃는다. 당황해도 반은 항상 웃고 있는 얼굴이다. 힘든 순간에도 절반은 웃긴 것을 찾아내는 중인 것 같다. 그에게는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먼 곳을 듣고 보려는 이가 가진 어둠에 대한 신뢰 같은 게 느껴진다.
먼지와 같은 우주에서 고래의 노래를 듣는 자의 습관인가. 자신은 잡배처럼 살았고 몸으로 때웠다고 말했지만 말수가 적은 자가 북새통에 나타나면, 인간다운 관계가 가능한 세상은 그들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침묵한다. 그들이 운전하는 택시에 타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상상마당에서 만난 택시였다. <부초의 초소>(3채널 비디오, 13분 50초, 갤러리 상상마당, 2012)에 등장한 택시는 인간다운 장소를 상실한 시대에 경험의 역주입을 통해 지배적 가치를 비워내는 표류기계였다. 기능을 전환시켜 가치를 재편하는 상황주의의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상황주의의 미학적 성취는 미완의 것이고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것이 있는 가치이다. 지역적이었고 잘 알려진 바 없는 상황주의는 퍼포먼스의 수행적 과제를 위한 다른 이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일상생활에 개입하는 새로운 방법을 탐구한다는 것은 장소를 창출하는 전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소를 파헤쳐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한 우주로 되돌려주는 은닉의 전략이다. 지리학 교수 에드워드 랠프의 『장소와 장소상실』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며,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미술이 여기서 더 해야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의무가 아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박형준의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서평에서 이렇게 전했다. “시는 진실이 표현되(면서 훼손되)는 장소가 아니라 은닉되(면서 보존되)는 장소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제시한 시인의 코기토(cogito)를 뿌리 뽑힌 장소에 사는 미술가에게 돌려 보았다. ‘나는 언어를 의심한다, 고로 나는 시인이다’라는 명제는 ‘나는 장소를 의심한다, 고로 나는 미술가다’와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방랑(환상)
아르튀르 랭보(1854∼1891)
나는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내 외투는 닳아빠져 관념이나 다름없었지.
창궁 아래 걷는 나는, 뮤즈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나는 눈부신 사랑을 꿈꾸었노라!
내 단벌 바지엔 커다란 구멍이 나고,
나, 꿈꾸는 엄지동자, 걸음마다 각운(脚韻)을 떨어뜨렸지.
내 여인숙은 큰곰자리,
하늘에선 내 별들이 다정하게 살랑거렸네.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였지.
멋진 9월의 저녁나절, 이슬방울들을
기운을 북돋우는 술인 양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의 그림자들 가운데서 운(韻)을 맞추며
나는 한쪽 발을 가슴까지 들어 올려,
해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겼지.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는 무계획적이다. 여다함은 랭보처럼 무계획적이다. 시를 쓰거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제대로 된 물건(작품)을 만들려고 두문불출 계획을 세워 혼신의 힘을 쏟는 선수가 아니다. 론썸택시드라이버 여다함은 그 저잣거리에서 먼지와 포장재를 뜯어내고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아주고 없앤다. 껍질을 만나면 껍질을 묻고 먼지가 날리면 먼지를 낚아챈다. 그것은 부조리한 경관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은닉을 통해 상황을 구축하는 여다함의 요철화다.
여다함의 무계획적 삶은 커뮤니티 아트를 블루스라고 여긴다는 기개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의 <무뢰한 정신>(싱글 채널 비디오, 7분 25초/8분 9초, 하드커버 389페이지, 2014)은 택시나 등대, 주차장과 같은 비-장소에서 장소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구축한다. 택시는 성냥갑 같지만 ‘즐거운 나의 집’ 아파트로 변신하고 택시드라이버는 밤마다 <꿈꾸는 아파트먼트> (사진, 비디오, 2분36초, 2002)를 태운다. 그래서 여다함의 작업은 택시드라이버의 시적 보고서쯤이 된다.
우리와 대치하고 있던 세계의 갑갑함은 이제 여기서 결별한다. 택시가 뚫어낸 균열 속에서 우리는 세계로 다시 연결되고 요철은 블랙박스에 기록되며 경관은 다르게 열린다. 이 부조리한 수용은 ‘천국보다 낯선’ 도시 속에서 껍질은 껍질로, 동상은 동상으로 지속하는 것을 부숴버린다. 역설적으로 우연과 즉흥 때문에 지속 가능한 미술이 된다. 그래서 여다함의 스타더스트 호는 블랙박스를 달고 블루스를 연주한다.(부초의 초소)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의 <등대>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가. 무수한 먼지가 불빛 따라 나방 같은 블루스를 춘다. 여다함의 <무뢰한 정신>이 혜성처럼 다시 떠올랐다. 얼음과 먼지가 공존하는 혜성은 고체를 기체로, 기체를 고체로 재편해내는 예술과 삶의 초상화였다. 여다함이 종종 말하는 커뮤니티 아트의 블루스가 그런 것일까. 미술은 이제 지루할 줄 모르는 저잣거리에서 잡문, 잡시, 잡학, 잡설로 계속해서 퍼져 나갈 것이다. 우리도 그와 함께 샛길로 빠지기만 하면 된다. 개념도, 계획도 무화시키는 여다함이 껴안은 세상은 미술이 더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 이제 스타더스트 호를 함께 타고 콤플렉스 없는 ‘블루스 커뮤니티 아트’를 춤추러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