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

정도련·뉴욕현대미술관(MoMA) 부 큐레이터


Portable Keeper / 2009 / 싱글채널비디오 12분

임민욱을 알게 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와 제대로 작업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큐레이터로서 약간의 ‘직무유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와의 일상적 대화는 항상 진지하다. ‘삶’에 대해서라고 말하면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늘 두 사람 간의 대화는 삶의 조건과 주변 그리고 괴리 쪽으로 길이 빠진다. 2009년 언젠가 임민욱을 서울에서 만났을 때였다. 서울 도심 한복판 경복궁 주변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서울은 왜 이렇게 깨끗해졌나요? 기분이 쾌청하기는 한데 정말로 좋아진 건지…” 라고 지나가는 말을 했다. 임민욱은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를 살짝 ‘크레센도’하며 “맞아요, 하지만 사라진 것들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즐길 수가 없는 거죠. 과거의 기억들, 지각적인 경험들, 소리, 냄새들…. 아래로부터의 참여는 없고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 온 공권력에 의한 개선은 문제죠”라고 답했다.
그 발언의 저변에는 은근한 분노가 깔려 있었고, 필자처럼 사회적 정치적 인식에 ‘발작성 수면(narcolepsis)’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발언이었다. 이 일화를 예로 든 것은 무작정 ‘예스’ 혹은 수동적 인정의 ‘응, 그런가…’식의 안이한 답변을 부정하며, ‘맞습니다. 하지만’ 혹은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라는 답변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위치성을 확보하는 태도야말로 임민욱의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적 주체성’이 아닐까하는 가설을 제시해 보기 위해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주체적 위치를 획득하는 과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곧 그의 작업이라는 가설이다.

‘거부’로 획득한 작가적 주체성

한국 미술계와 간헐적 관계를 맺고 있는 필자로서는 임민욱의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이 언제였는지 확실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2006년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열렸던 그룹전 〈사춘기 징후〉에 출품되었던 그의 비디오 작업 〈뉴타운 고스트〉는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같은 해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처음 작가를 만났지만 전시된 작품은 여성만이 관람할 수 있다는 규칙 때문에 볼 수가 없었는데, 되돌아보면 당시에는 그 ‘거부’의 제스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2007년 후 한루가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스탄불비엔날레에서 〈뉴타운 고스트〉로 초청을 받은 임민욱을 다시 마주치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곳곳에서 열린 전시를 계기로 작가와의 마주침은 계속되었다. 마치 하나의 혹성과 위성의 정기적인 조우처럼…. 다행히 2008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점프컷〉을 볼 수 있었고, 지난해에는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LACMA)에서 열렸던 〈당신의 밝은 미래〉전, 멕시코시티의 타마요미술관에서 열린 또 하나의 한국 현대미술 그룹전 〈Unconquerable: Critical Visions from South Korea〉, 그리고 다시 로스앤젤레스의 레드캣(REDCAT)에서 열린 〈Everyday Miracles (Extended)〉 등의 전시를 통해, 근작들을 연달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1)
이렇게 작가와 필자 사이 ‘조우의 역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임민욱의 활동 페이스가 지난 몇 년 사이에 액셀을 밟은 듯 급격히 가속화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 위함은 물론, 필자와 작가 사이의 대화가 길지 않아 이 작가론을 지난 몇 년간의 작업에 집중시키려는 것에 대한 핑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접근법으로 ‘작가적 주체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제시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그동안 임민욱의 작가론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것을 짚어 두고 싶다. 바로 임민욱의 작업은 보기보다 좀처럼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흔히 ‘사회 비평적’이고 개인사적인 요소도 가끔씩 적용된다는 식으로 분류된다. 그의 작업을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 본다면 나 역시 그렇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서 형식적 방법론적 요소들을 총괄적으로 고려해 보면 미술 비평의 일반적 용어가 잘 적용되지 않는다. 임민욱의 작업은 ‘거부’라는 지속적인 태도가 기반으로 존재하고, 거기에 따르는 방법론 역시 양식화를 또 한 번 ‘거부’하며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뉴타운 고스트〉(2005)는 나에게 임민욱의 작업에서 진정한 의미를 열어 준 첫 장이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여러 번 전시가 되면서 작가를 널리 소개해 주었던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젊은 래퍼가 트럭 뒤에 서서 확성기를 들고 시가지를 활주하며 벌이는 퍼포먼스 기록 영상 작업이다. 영상은 두 가지 방식으로 편집되어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전시된다. 첫 번째 방식은 작가가 직접 편집한 영상을 프로젝터로 벽면에 크게 상영하고 관람객은 선 채로 혹은 벤치에 앉아서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전문가에 의해 편집된 버전을 텔레비전에서 재생시키고 관람객이 그 앞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서 마치 자기 응접실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작품이 작가의 사적인 역사와 깊이 연관된 영등포 지역의 재개발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여러 번 밝혀진 바 있다. 작가는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것을 “과거의 흔적은 볼 수 없을 뿐더러 현재의 모습은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동시에 지워 나가고 있는… 데쟈 뷰(기시감) 현상이 아니라 데쟈 디스파뤼(이미 사라진 어떤 것에 대한 전혀 새롭고 독특한 느낌) 현상”이라고 설명했다.2) 특히 내가 이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퍼포머와 협업을 통한 ‘수행적(performative)’ 접근과 다큐멘터리 방법론의 ‘접합’이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는 형태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 늦은 혹은 너무 이른, 아틀리에 / 싱글채널비디오, 오브제 / 2007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 수상작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

그 이후에 발표한 2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잘못된 질문〉(20 06)은 처음에는 이전의 작업과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는 듯 보인다. 비디오 영상에는 어느 날 밤, 택시의 뒷좌석에서 녹취한 운전사의 독백과 작가 자신의 가족(그의 딸과 아버지)의 일상적 대화가 병치되어 담겨 있다. 카메라 포커스와 촬영 속도를 의도적으로 조절해 이미지들을 흐릿하게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목소리에 담긴 각각의 이데올로기는 더욱 극명하게 노출된다. ‘진보’라는 이데아에 대해 냉전과 독재의 구시대적 논리를 펼치는 가운데 강하게 드러나는 운전사의 노스탤지어,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손녀딸이 국적과 국가 정체성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가 대비되어 겹쳐진다. 결국 이 작업 역시 등장인물 모두가 사회와 이데올로기의 구조 안에서 각각의 이행을 통하여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는 ‘수행성(performativity)’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이 영상 작업은 어둡고 경사진 통로를 통해 들어가 발코니에서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설치함으로써 관객과 작품의 공간을 분리시킨다. 그 결과, 예외적 공간에 의한 이미지의 불확정성에 신체적 소외감이 더해진다.
오래 전부터 작가에게 ‘한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에서 비롯된 억압과 비합리성이 지적 관심사이자 작품의 동기가 되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 야기한 정신적 소외와 개인사로부터 경험하게 된 정치적 혼란은, 비극과 희극의 항시적 평행을 이루어 낸다. ‘성공적인 실패’라는 역설과 자각 속에 있는 한국의 의미, 그리고 작업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가야 할 작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3) 20세기 말, 21세기 초라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타자성’에 대해 첨예하게 모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사회는 여전히 ‘우리나라’라는 1인칭 복수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연 상태의 국수주의적 사상을 토대로 한 단일한 공동체를 의무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임민욱의 작업을 꿰뚫고 있는 특성 중 하나는 이러한 ‘단일성’에 대한 의심이다. 이주 노동자, 비전향자, 경제적 소수민, 그리고 자신이 속한 다문화가정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꾸준하게 관심을 보여 온 대상들은 다름 아닌 ‘공동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의를 함으로써 그것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소수의 집단들이다. 사실 임민욱의 작품은 여러 가지 공동체들에 관한 것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공동체 속에서 개인으로서 형성되는 주체성으로 인해 쉽게 범주화할 수 없는 과정을 다룬다. ‘공동체’라는 것은 공감 혹은 동일화(identification)의 심리적 사회적 메커니즘을 통해서 가능하고, 거기에는 언제나 수많은 위기(crisis)가 내재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위기 자체가 동일화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임민욱이 선택한 작가라는 정체성에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다른 미술가와 또 미술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형성하는 ‘공동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평가 강수미가 “이 작가의 ‘범속한 아트’가 모순되게도 매우 고도로 ‘비(非)범속한 관객을 위한 아트’가 아닌가 하는 의심”4)을 언급했던 것은 임민욱 류의 작업이 엘리트주의자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아트’의 정의가 애초에 어느 한 쪽으로 결정된 상태(존재하지 않는 순수 공간에 유배된 상태) 였다는 것은 물론, 그것을 다시 도구화시켰던 지배 체계에 대한 거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
이 ‘비범속함’은 임민욱의 작업에 항상 느껴지는 ‘거리감’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이는 막연한 불친절함이나 난해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임민욱은 기꺼이 관객을 작품 안으로 불러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지와 서사성을 은폐시켜 항상 일정한 거리를 남겨 둔다. 다시 말해 작품 속에 분명히 내재되어 있지만 안이한 감상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내용(content)’을 숨겨 둠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속으로 진지하게 접근하도록 이끄는 ‘과정’을 작업의 형태로 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여정을 경험하기로 동의한 관객의 심리 속에서 공명과 공감이 비로소 작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큐레이터 김장언이 “완결된 장치의 고안에 몰두하지 않으며, 개념과 실천을 강조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사학의 작동 원리에서 최소공배를 설정하고자 하며, 그 설정 자체에 집중한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다.5)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작업 속에서 ‘인지’의 순간들은 찾을 수 있지만 동시에 ‘논리적 이해’는 계속 좌절되고 만다. 이런 좌절과 거부를 통한 창조,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예술적 욕망은 작가가 쉽게 특정 지워지지 않는 매체와 다양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안이함을 거부하는 부재의 논리, 또한 거기서 발생하는 괴리감은 능동적 해석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작용에 있어서 전혀 공명을 느끼지 못하거나 일상의 논리로 단순히 회복될 가능성은 이런 접근 방식이 안고 있는 운명의 일부이다.


뉴타운 고스트 / 2005 /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10분

생산적 긴장 관계

200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점프 컷〉을 준비하던 당시, 임민욱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 “개인전이라는 ‘프레임’에 맞춰 자기독백적이거나 상징의 집합체가 아닌, 예술보다 더 재미난 삶으로서의 예술이 될 수 있을까를 반문하고 있다.(중략) 정치의 피난처가 아니면서 생산적 긴장 관계가 공간과의 접합을 이루어 내는 지점”6)이기를 원한다고. 이 발언에서 제시되듯이 그 개인전은 한 작가의 작업, 다시 말해 ‘내 스타일은 이런 것’이라고 확정하고자 하는 작가 개인의 흔한 욕망을 거부하는 전시였다.
그 전시에 선보였던 2채널 비디오 작업 〈스무고개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2008)에는 예전에 작가가 천막 디자인을 맡았던 다문화 축제 ‘세계시장-바자르’가 촬영 장소로 쓰였다. 또 남에게서 물려 받은 구식 그랜저 자동차는 퍼포먼스를 위해 안료를 올려 놓은 채 비오는 날 도로를 달리기도 했다가 전시장 안으로 들어와서는 분수로도 변신했다. 당시 사용되었던 안료는 웅덩이에 고인 물과 합쳐져 마블링의 재료가 되어 그 결과물이 전시장에서 다시 합류하고, 또 대리석과 강화유리로 만든 긴 테이블 위에 작은 산맥처럼 쌓여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장편영화 〈희생〉(1986)이 8분짜리 압축 버전으로 상영되고, 그 바로 옆의 좁은 통로를 통해 발코니로 나오면 바닥에 산산조각 난 강화유리 파편들이 북극의 바다처럼 펼쳐지는 경관을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아주 다른 방식의 두 작품들은 ‘점프 컷’이란 용어를 제목의 일부로 공유한다.
매체로만 보더라도 이 전시는 비디오 설치 사진 오브제 등을 망라했는데 이는 임민욱이 다매체를 ‘구사’하는 작가라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설명했듯이 ‘생산적 긴장 관계’를 가시화하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 전체를 통틀어서 보았을 때 드러난 것은 이미지, 오브제, 공간, 혹은 내러티브를 만드는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이며 절대적 객관성에 대한 ‘반대’이다. 동시에 비확정적 비연속적 파편적 출제와 독해 방식의 ‘선호’이다. 이는 오늘날 작가의 역할에 대한 임민욱의 또 다른 언급을 생각나게 한다. “수용된 자유라는 것이 있나?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일 뿐이다.”7)
이렇게 〈점프 컷〉전에서 보여 준 유연하고도 비확정적인 작업과 전시 방법론은 야심찬 후속작 〈S.O.S-채택된 불화〉(2009)에서 다시 한 번 진화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뉴타운 고스트〉와 〈잘못된 질문〉에서 드러나는 ‘수행성’ 혹은 ‘연기성’은 한 단계 더 발전하여 관람객을 포함하는 형태를 취한다. 한강유람선 안에서 시공간 특정적으로 전개되고 경험되는 이 작품은 거의 오페라 같은 ‘총체예술(Gesamtkunstwerk, total work of art)’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배는 빛과 속도의 차이를 수용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입장에서 공유한 기억을 되살려내는 일시적 공동체의 일원이, 더 나아가 어느덧 퍼포먼스의 주체가 되는 주객체 전도의, 뫼비우스의 띠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8) 유람선 선장의 서술적 내러티브와 조명을 이용한 실내외의 라이트쇼가 퍼포먼스의 뼈대라면, 그 살을 이루는 것은 한강변의 세 지점에서 벌어지는 연극적 장면들이다. 반사경을 들고 벌이는 시위대의 군무와 합창, 정처 없는 남녀 한 쌍의 듀엣, 그리고 절두산 성지 밑 강변에 주차된 차가 헤드라이트로 보내는 S.O.S. 모르스 신호와 선내에서 무전기로 전송되는 전 비전향 장기수의 독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때 기록된 영상은 이후에 싱글채널 혹은 3채널의 비디오 작품으로 편집되어 전시된다.


Portable Keeper / 2009 / 싱글채널비디오, 12분

여기, 내 안의 바틀비

〈S.O.S〉를 준비하는 과정에 작가는 〈내 안의 바틀비〉라는 글을 썼다.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의 1853년작 단편소설 《서기 바틀비》에 대한 짧은 수기는 작가가 파리에서 생활하던 시절에 발견한 이 책의 영향에 대해 말한다. 멜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틀비는 한 변호사의 사무실에 서기로 고용된 후 그에게 요구되는 임무마다 “I would prefer not to(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사무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후에도 텅빈 건물을 떠나기를 거부하며, 심지어 먹기마저 거부하여 결국에는 죽고 마는 인물이다.
이 ‘거부’의 상징인 바틀비와 〈S.O.S〉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작가는 멜빌의 바틀비와 자신의 〈S.O.S〉의 연관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순과 억압이 전방위적으로 일상 속을 파고드는 현대 사회에서의 저항엔, 그 강도가 다를 뿐 바틀비 식의 거부는 일시적 떨림, 망설임, 헛소리, 중얼거림 속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거부의 소통’ 과정은 작품 내에서 레치타티보(서창) 독백 아리아 합창 등의 형태로 표현된다. 〈S.O.S〉는 발전과 미화의 기치 아래 끊임없이 엎어지고 뒤처지는 한강변의 시각적 환경과 제도로부터 좌절된 소통의 파편들을 재통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거부와 무능의 수행을 통해 순수한 주체성을 획득한 바틀비의 상징적 이미지와 연결된다.
멜빌이 《서기 바틀비》는 그 책이 나오기 2년 전에 출판된 야심작 《모비딕》 (1851)의 부진한 판매에 대한 대응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듯이, 바틀비는 저자의 자전적 형상이라고 가끔씩 해석된다. 즉 서기인 바틀비는 곧 작가 자신이며, 그에게 요구되는 직무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행위 역시 멜빌이 경험한 좌절이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작가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존재의 문제에 관한 집착은 관례적 표현 방법을 저버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스페인의 소설가 엔리케 빌라-마타스(Enrique Vila-Matas)가 2001년 출간한 실험적 소설 《바틀비와 동료들(Bartleby y compania)》에서는 바틀비처럼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는 식으로 글쓰기를 포기한 작가들, 즉 등장인물 베켓 랭보 호손 샐린저, 그리고 멜빌을 ‘아니오의 저자들(Writers of the No)’라고 부른다. 임민욱의 〈내 안의 바틀비〉를 읽으며 그도 ‘아니오의 작가(an artist of the No)’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니오의 저자들’처럼 자기 거부, 자기 소멸을 향해 가는 것은 임민욱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우쳤다. 모더니즘 문학의 거성들이 포기와 거부를 통해 주체성과 사회 내부의 위치를 의도적으로 격리했다면 임민욱에게 있어서 존재의 조건이란, 사회와 개인 간의 구분에서 오는 ‘혼란’이야말로 확정적 정의를 거부하는 근원이며 형태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틀비는 또 다른 연상을 일으킨다.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마틴 키펜베르거의 1992년작 〈마틴, 저 코너에 가, 네가 부끄러운 줄 알아(Martin, Into the Corner, You Should Be Ashamed of Yourself)〉라는 작품이다. 미술과 실생활에서 ‘배드 보이’의 명성을 구축한 키펜베르거는 나쁜 짓을 한 아이들에게 내려지는 벌, 즉 방의 코너를 향해 선 채 자신이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반성하라는 지시를 자신 스스로에게 내린다. 작가의 머리와 손을 알루미늄으로 주조를 떠서 마네킹을 만들고 그 위에 옷을 입힌 이 조각은 한 독일 비평가의 유난히 공격적인 비판에 대한 조크이면서 미술가를 천재이며 미치광이고 일탈자로 규정하는 낭만주의적 신화의 신체이기도하다.
이런 방식의 대비라고 할 수 있을까. 임민욱의 〈Portable Keeper〉 (2009)는 필기도구 묶음, 인조 모피(이전 작업에서도 쓰인 물질)와 새 깃털, 선풍기팬을 하나로 모아서 긴 형태의 무기이자 장식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오브제와, 그것을 들고 폐허가 된 공간을 걸어 가는 퍼포머의 모습을 영상과 사진의 기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뉴타운 고스트〉와 〈S.O.S〉에서 보여 줬던 끊임없는 ‘개발주의’에 대한 사유의 연속이며 “잘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 태생의 작가이면서 루마니아에서 자라고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앙드레 카데레(Andre Cadere)의 작업 〈Round Wooden Bars, 1970~78〉에 경의를 표하며”라고 작가는 덧붙인다. 수공으로 깎고 칠한 둥근 목재 링들을 꿰어 만든 막대기를 들고 파리의 거리를 ‘플라뇌르(flaneur)’처럼 활보하며, 자신의 작품을 타작가의 전시에 삽입하는 퍼포먼스를 했던 카데레의 작업과 존재 방식은 위트가 담겨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전복적인 것이었다. 키펜베르거의 와일드하고 ‘삶 그 자체보다도 더 큰(larger than life)’ 존재 방식에 근본적으로 대조되는 것이었다.9) 키펜베르거의 작업을 “냉소적이고 희비극적인 미술에서의 구원에 대한” 가능성으로 인정하고 감탄하는 임민욱에게는 카데레의 접근법이 ‘불화를 껴안는 방식’의 가능성으로 다른 종류의 공명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10)
이를 가리켜 작가는 ‘전복적인 무위’라는 표현을 쓴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필자는 임민욱 작업의 기반에는 ‘거부’라는 지속적인 자세가 위치하고 있다고 했다. 글을 맺으면서 약간 전환해 보고자 한다. 거부의 이면이 타협이라면, 주체는 항상 타협으로 짜맞춰진다. 즉 ‘지속적 거부’는 ‘지속적 타협’으로 치환되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변화를 갈구하는 욕망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작가는 이 상황에서 절대적인 거부란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각인되는 ‘무능’을 부단히 변화하는 방식으로 도입하면서 일시적 장치들로 제안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No”라는 절대적 부정이 아니라, 상호주체성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는 “I would prefer not to”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키펜베르거의 등 돌린 자세와 떠도는 삶의 카데레 사이에 위치하는 진동의 방식이며 임민욱의 수행이라고 상상해 본다.

1)LACMA의 전시는 텍사스주 휴스턴미술관과 공동조직되어 린 젤레바스키, 크리스틴 스타그만과 김선정이 공동 큐레이터였다. 임민욱 외에 구정아 김범 김수자 김홍석 박이소 박주연 서도호 양혜규 장영혜중공업 전준호 최정화가 작가로 참여했다. 큐레이터 김희진이 기획한 뮤제오타마요의 전시는 김범 김상돈 박찬경 배영환 등이 참가했다. 레드캣의 전시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의 후 한루가 기획해 이주요, 칸 쉬안, 쉴파 굽타, 함라 아바스를 포함한 7명의 아시아 여성 작가들로 구성된 전시였다. 2)김선정 과의 인터뷰, 〈당신의 밝은 미래: 한국에서 온 12 현대 미술가〉 전시 도록, 144쪽. 3)같은 책, 145쪽. 4)강수미, 〈네 이웃의 미술, 명작에 反하여〉, 《월간미술》 2007년 4월호 5)김장언, 〈예술가의 변이: 임민욱 & 프레데릭 미숑〉 6)〈당신의 밝은 미래〉 전시 도록, 144쪽 7)같은 책, 146쪽 8)임민욱, 〈내 안의 바틀비, S.O.S. - 채택된 불화〉 9)정도련, 〈마틴 키펜베르거, 요절 작가의 신화적 삶과 예술(Fast And Furious)〉,《아트인컬처》 2009년 8월호 10)작가와의 대화, 2010년 4월

*이 글은 월간 아트인컬쳐 2010년 5월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