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흐름과 인프라 노마드: 임민욱 개인전, 꼬리와 뿔

김지혜, 독립큐레이터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그리고 공기의 흐름은 가벼운 것들을 이동시킨다. 우리는 도시 속 수많은 개인들이 바람에 휩쓸려 이동하는 장면들을 목격해왔다. 그리고 이렇게 이동하는 이들을 ‘인프라 노마드’라 부른다. 인프라 노마드는 자크 아탈리에게서 온 개념으로 '정착민'과 '하이퍼 노마드(자발적 이주민)'와 더불어 제시된 '비자발적 이주민'을 일컫는 말이다. 즉 헤게모니, 자본, 권력 등에 의해 의지와 상관없이 이동해야 했던 수많은 이들이 이에 포함된다. 임민욱의 이번 개인전은 그동안 우울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표현되어온 ‘인프라 노마드’를 낭만적인 예술 언어로 치환하여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유동성을 지닌 재료의 채택과 여정이 첨가된 영상으로 가능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서, 시선을 집중적으로 사로잡은 것은 라텍스로 만들어진 거대한 지형도 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이 라텍스 작업은 재래시장에 있는 한 낡은 건물의 옥상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라텍스는 본디 단백질 층에 싸인 천연고무의 입자가 물속에 떠있는 것으로 액체 상태로 된 것을 말한다. 그 액체가 고체로 정체성을 바꾸고, 다시금 그 재료를 생산해내지도 못하는 대한민국 언저리의 후미진 공간에서 가공되어 작품으로 바뀌는 일련의 과정은 ‘인프라 노마드’들의 운명과 교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 어디에서도 지형도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뿔뿔이 흩어진 ‘비자발적 이주민’들의 분포를 나타낸 것이라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라텍스 지형도 위에 뿔 혹은 꼬리처럼 서 있는 구조물은 영상작품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서로를 부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포터블 키퍼 portable keeper>로 명명된 영상작품은 바람에 의해 이동되는 인간의 조용한 저항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보였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 생산된 사물의 본래 기능을 삭제하고, 오로지 오브제로만 존재하는 선풍기를 들고 인적 없는 재개발 현상을 산책하듯 거니는 한 남자. 그는 그 장소에서 유일하게 자의적 행위를 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소 환상적이게 그려진 장면은 퍼포머의 현실과 다시 맞물리며, 비현실과 현실의 또 다른 교차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렇듯 이질적인 것들의 교차는 평면작업에서도 이어진다. 마블링이다. 전혀 어울릴 줄 모르는 그것들이 단지 우연에 기대어 만들어내는 장면은 매우 역동적이며 자연스우나 역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무력해 보였다. 마치 ‘정착과 안주’라는 게 현실에 만족하고, 어울릴 줄 아는 이들에게나 허락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우연성과 비자발성은 또 다른 퍼포먼스를 동반한 드로잉들에서도 엿보이고 있다.

과연 도시 속 개인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임민욱의 이번 개인전은 도시 속 개인의 ‘아픔’이 아닌 ‘무게’에 대해 생각토록 한다. 물론 이러한 화두는 지난 시절, 젊은 지성들을 매혹시켰던 실존론에서 질리도록 다뤄진 바 있다. 하지만 임민욱의 작품 앞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질문은 실존론의 그것과 달랐다. 온전한 현상들로 측정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무게랄까? 정말 슬픈 것은 아직까지도 공기의 흐름에 쉽게 휩쓸리는 ‘비자발적 이주민’들이 ‘자발적 이주민’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바람을 짊어지고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며 거니는 사내의 퍼포먼스 앞에서 우리는 보다 낭만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전시에서 어떤 무형의 희망적 메시지를 발견한 것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연상 행위이리라.

*이 글은 미술세계 2010년 4월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