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욱—"Jump Cut"
김선정, 독립큐레이터
교차와 전환의 순간
임민욱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 주목하고 또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나서는 작가이다. 시간적 개념과 현재의 상태나 상황을 의미하는 ‘지금’ 은 한국 사회가 열리고 변화하는 시기이고 마라톤의 반환점처럼 달려 온 길과 돌아서 다시 달려 가야 할지 모르는 교차 지점이다. ‘지금’, ‘여기’를 주목하는 임민욱은 한국 사회를 관찰하면서도 자신을 둘러 싼 환경으로서의 한국을, 대상화 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다룬다.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빠름과 단절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임민욱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운동성에 주목하였다.
영화 용어인 점프 컷은 배경은 그대로 고정되어 있고 연기자의 동작이 시간을 뛰어 넘어 점프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의 편집 기법이다. 역동적인 점프는 표면상으로 어떤 지점이나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게 하지만, 과정이 생략되면서 발생하는 빠른 속도는 희생을 그리고 지속성의 부재는 상실을 가져온다. 임민욱은 한국 역사의 불안정한 상황과 그 상황이 가진 운동성과 희생의 역사, 그리고 여전히 진행중인 적응과 부적응 관계의 패턴에 주목하여 시공간에서 연속 선상을 유지할 수 없는 작품 제작 방식, 세대 간의 삶에 대한 기억과 관찰을 점프 컷을 통해 보여주면서 관객과 열린 구조로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다. 빠른 운동성과 속도, 점프는 근대화의 필요한 요소지만, 이로 인해 생략된 과정에서 만들어 지는 상실감은 한국 사회의 운동성을 가속화시킨다. 이를테면 가속화된 속도는 멈추기를 잊고 반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멈춤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상실감을 잊어 버리기 위해서는 더 빠른 운동성이 요구된다. 압축 성장은 전통적인 관계와의 단절에 따른 세대간의 갈등과 이로 인한 대화의 단절과 외로움 등의 현 상황을 잊어 버리거나 망각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운동성을 가속화한다.
임민욱은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방식을 자신의 일상 속 경험과 관찰을 통해 ‘약간’의 변경을 구함으로써 미술의 또 다른 실천방식을 모색하고 싶다고 피력한다. 그러한 일상 속 ‘약간’의 발명과 재해석의 모습은 “Jump Cut”전시의 여러 오브제 작업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권위와 부의 상징이었던 그랜저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라질 단어들을 붙이고 비오는 날 자유로를 달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그 퍼포먼스의 결과물인 자동차를 전시장 안에 직접 들여놓아 분수대로 이용한다. 자동차는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원래의 용도인 탈 것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작품으로 변환된다. 또한 부드러운 촉감의 모피를 밀어내는 행위, 강화유리를 깨는 등의 삭감과 부숨의 행위를 통해 재해석 할 동시성과 이면으로 읽게 한다. 물과 기름의 섞이지 않는 재료의 성질을 이용해 우연한 움직임을 포착한 마블링 작업의 표면이 만들어내는 흔적, 인조모피에 경제성장신화의 상징적 지점들을 패턴으로 밀어내는 작업 들은 세대간의 갈등, 그리고 소외, 도시 개발의 환상과 분열 등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상실감과 희생의 역사를 전용한 방식이다.
임민욱은 명확한 주제에 추상적인 언어를 이용하여 직접적이 아닌 우회하는 방식으로 교차의 지점을 채택한다. 이전 작업인 <뉴타운 고스트>(2005)에서는 트럭을 타고 도는 영상과 랩 음악을 통해 개발 예정지를, <잘못된 질문>(2006)에서는 한국 전쟁 전후 세대의 갈등의 교차점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택시라는 장소를 다루고 있다. “Jump Cut”에서는 “2008 다문화축제”를 하루 동안 찍어 편집한 다큐멘터리가 등장한다. 이 작업에서는 현장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뮤직이 리믹스 되어 일곱 살 여아의 연출된 상황이 담긴 스틸 컷과 교차한다. 현실을 그대로 찍은 영상과 연출된 상황, 그리고 현장의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뮤직의 리믹스는 서로 다른 방식이나 요소를 교차시켜 미술 언어의 엄숙함 즉, ‘숭고미’와는 또 다른 ‘거리 두기’를 시도 한다.
‘약간’의 변경
임민욱은 여러 다른 문화 사이의 교차나 우연적이면서 일시적인 관계 그리고 시차에 주목하면서도 세대 간의 삶과 생각의 차이, 사회의 부적응, 소외, 전체주의, 경제 지상주의 등의 사회적 문제를 작가의 관점으로 풀어간다.
1998년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임민욱은 “의식주”(1998) 전에서 전시장 밖의 버스정류장에 광고처럼 보이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는 바깥의 일상공간에 작업을 설치하여 무의식적으로 흡수되는 소비사회의 미디어에 의한 교란을 다룬 것이다. 이후 마로니에미술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한 “사회적 고기”(1999)전에서는 창고 공간의 물건을 전시장으로 옮기고 창고 공간을 관람객에게 공개하여 미술관의 감춰진 공간을 드러내고 행정적, 제도적 체제를 드러내는 작업을 함으로써 미술의 유의미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미술제도 안의 작가와 관람객의 관계를 드러내는 시도를 하였다.
‘약간’의 변경은 전시장이 아닌 주어진 상황을 이용하면서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 드는 작업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엑스포(2000) 전시에서 임민욱은 프레드릭 미숑과 협업으로
영상물 <스무 고개: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2008)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경계와 변화에 주목하는 작업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단일 민족이라는 교육된 민족주의에서 다문화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에 있다. 임민욱은 타 민족의 이주를 통해 전환점에 서 있는 한국 사회의 균열과 틈새를 읽어내고 새로운 노동의 풍경을 축제의 형식을 빌어 반가움과 낯설음의 교차로 보여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다문화축제는 1회에는 “외국인노동자 문화축제”, 2회는 “이주노동자축제”, 3회는 “이주민과 함께 하는 다문화축제”라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진행되어왔다. 축제명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주민의 포함 범위가 넓어지고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인 이주민들에 대해 어떻게 그들과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을 정의하고 호명하는 지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임민욱은 그들을 반가운 낯설음이라 부르며 한국에서 차츰 주변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들의 모습을 감동과 교화의 목적을 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모이고 흩어지는 운동성의 관계,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카메라 너머의 소리로, 우리가 스스로 새로이 만들어야 될 이름을 찾는 스무고개로 담아낸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작가 개인의 전환점이며, 동시에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전환점을 다루고 있다. 특히 미술 체제와 미술 제도에 대한 관객의 능동적 태도, 그리고 신체적 개입을 통한 공간의 해석을 제시해온 임민욱은 이번 전시를 통해 아트선재센터라는 전시공간의 전환점에 대해 고민한다. 그녀의 작업 태도는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아트선재센터의 향방과도 맞물려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의 현 상황에서 작가가 바라 보는 전시의 의미와 전시장의 역할에 대해 사적?공적 기억과 공간의 경계지점을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 물 웅덩이에 물감을 뿌리고 움직여서 만들어낸 마블링 편지지를 띄우며 또 하나의 만남, 열린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것처럼 이번 전시를 통하여 전시가 열리는 장소인 아트선재센터의 전환점도 함께 기대해 본다.